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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19 지금 전쟁이 터지면 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2006.10.19 20:21
상황예민성 : 42 점 행동신속성 : 70 점



당신은 무모하다. 당신은 석유통을 들고 불 속에 뛰어들 사람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당신을 멋지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순무식의 전형이라 경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가치관에 따라 일관성만 유지한다면 당신의 그 무모함은 우직한 충절로 인정 받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그런 일관성이 없다면 당신은 그저 어리석은 기회주의자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순발력이 당신의 생존 비결이다. 당신의 빠른 행동 덕분에 당신은 여러 번 위기를 모면한다. 물론 다른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위기를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급박한 상황에서는 논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본능에 의존해 움직이게 되는데 바로 그런 상황이 당신에겐 유리하다.


당신의 순발력은 대단하지만 그 방향이 문제다. 성급하면 실수도 많다. 문제는 전쟁터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은 잘못된 판단을 근거로 성급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즉, 당신은 어느 누구보다 한 발 빨리 폭탄이 떨어지는 곳으로 뛰어들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전쟁터에서 벗어나라. 그럴 수 없다면 냉정해져라. 전쟁터는 당신의 피를 끓게 하겠지만, 진정하라. 당신은 냉정을 되찾고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살아 남는다. 행동하기 전에 한번만 더 생각하라. 특히 당신만큼 행동이 빠르진 못하지만 당신보다 상황 파악을 잘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라. 어차피 융통성이 부족하다면 그것을 초지일관하는 우직함으로 승화시켜라. 그렇다면 죽어도 멋지게 죽을 수 있다.


/ 잔다르크
1412-1431. Joan of Arc. 백년 전쟁을 프랑스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소녀 기사. 프랑스 농민의 딸로 출생. 13살에 하느님이 보낸 3명의 천사들로부터 영국의 침략에서 조국을 구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당시 프랑스는 버건디와 연합한 영국에게 북부 프랑스 전 지역을 빼앗기고 왕권마저 박탈당한 상황. 이에 쟌다르크는 머리를 깎고 남장을 한 채 프랑스 군에 들어간다. 프랑스 군 장교들을 오랜 시간 끝에 설득 후, 천사를 상징하는 은빛 갑옷을 입고 군대를 지휘하게 된다.


1429년 올레앙에서 벌어진 첫 번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연이어 영국군을 격파, 쟌다르크는 일약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쟌다르크의 활약으로 프랑스의 국왕 샤를 7세는 왕위에 복귀하고, 프랑스는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러나 샤를 7세와 프랑스의 기득권 세력은 영국과 더 이상 지겨운 전쟁을 치를 생각이 없었다. 쟌은 전장에 나가지 말라는 왕의 명령에 불복종, 자신을 따르는 소수 병사들을 이끌고 계속 전투에 임한다. 1430년 쟌다르크는 영국에 빼앗긴 파리 근처의 성을 공격하다 버건디의 군대에 사로잡혀 프랑스의 친영파인 브루고뉴 세력에게 종교 재판을 받았고 결국 1431년 마녀로 판결 받고 화형을 당한다.


쟌다르크가 이끌었던 올레앙의 전투는 아직도 군사 전문가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다. 당시 프랑스는 오직 쟌다르크가 불어 넣은 종교적 신념만으로 전력과 전술, 지형상의 불리함을 모두 극복한 채 승리했기 때문이다.


/ 조지 패튼
1885-1945. GEORGE S. PATTON.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야전 사령관이자, 가장 독특한 개성을 지녔던 군인. 20세기 전차 부대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병석의 사병을 폭행하고 상부의 명령도 거역하는 등 전장에서 수많은 파격적 에피소드를 남긴 다혈질의 군인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정치나 개인적 권력에 타협하지 않은 용맹한 군인이기도 했으나, 유태인 혐오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로 알려지면서 말년에 지탄을 받기도 했다.

미국 독립전쟁, 멕시코 전쟁,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유서 깊은 군인 집안에서 출생. 어린 시절부터 자기 조상들의 용맹한 활약상을 듣고, 자신도 이 다음에 커서 “전쟁 영웅”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1909년 미 사관학교 웨스트 포인트를 졸업하고 제15 기병대 소위로 임관한다. 1915년 전설적인 존 퍼싱 장군 밑에서 멕시코 전에 참가, 멕시코 군을 상대로 두려움을 모르는 과감한 공격을 감행한다. 이때 퍼싱 장군의 신임을 얻고 대위로 승진.

1917년 1차 대전에 참전, 당시 세계 최초로 창설된 미국 전차 부대의 지휘관으로 활약한다. 그는 영국의 전차 부대와 연합해 프랑스 캉브래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1918년 345대의 전차 여단을 이끌고 아르곤느에서 다시 독일군을 격퇴시킨다. 이때부터 그의 대담하고 독특한 전투 방식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전장을 맨 앞에서 탱크를 지휘하면서 후방의 군대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비둘기와 달리기에 능한 전령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는 항상 적의 총포탄이 쏟아지는 최전방에서 지휘를 했고 그 덕에 다리에 심한 총상을 입는다. 이 부상으로 무공훈장을 받는다.

이때부터 패튼은 탱크 전문가로 유명해졌고, 전쟁에서의 탱크의 유용성을 상부에 설득하고 다닌다. (그는 미국 제일의 탱크 지휘 교관이기도 했다) 그는 전차 간의 무선통신 기술을 적극 개발했고, 대포와 기관총을 장착한 회전형 전차의 개발에도 참여해 20세기 탱크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1차 대전 이후엔 의회를 설득, 미국의 기갑사단 증설에 성공한다. 이후 패튼은 “전차 매니아”로 유명해졌고, 평생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는다. 그는 1941년 라이프 잡지의 표지모델로 뜰만큼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M47 "패튼" 탱크.
전차 이름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군 이름을 따서 짓는데, 패튼 탱크는 꽤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941년 진주만을 공격 당한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 1942년 패튼은 미군으로만 구성된 워스턴 태스크 포스의 지휘관으로 참전한다. 북 아프리카에서 롬멜 장군에게 연전연패하던 연합군 기갑부대를 엄격한 훈련으로 강화했고, 반격에 나서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미 7군의 사령관으로 특진, 1943년 시실리 섬을 탈환한다. 1944년엔 노르망디 상륙작전, 파리 수복 및 벌지 전투에서도 전과를 올려 2차 대전 사에 확고한 발자취를 남겼다.

1944년 프랑스의 3군 사령관으로 임명,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독일군 전선을 돌파해 굉장한 성공을 거둔다. 당시 그가 군대를 이끌고 독일군을 격파하며 돌진한 거리는 프랑스에서 체코슬로바키아까지 900km가 넘는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그가 이끄는 3군이 점령한 지역은 100만 제곱km에 달한다.

전쟁 후 독일에 주둔한 미 17군 사령관으로 복직. 1945년 차가 전복되는 사고로 목이 부러졌고 12일 뒤 사망. 그는 룩셈부르크 벌지 전투에서 생사를 함께 했던 군인들과 함께 묻혔다.

그는 두려움을 모르는 천부적인 군인이자 독불장군이었다. 그는 극악의 위험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최전선에서 지휘했으며, 대담한 발상과 거침없는 전진, 전광석화 같은 기동력으로 독일군을 두려움에 몰아넣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은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서라도 밀어붙였다.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을 지원하지 않고 독단적인 결정으로 팔레르모의 적진을 탈환한 것이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부대를 이끌고 독일 함락을 위해 전진한 것도 그랬다.

그는 역대 미군 장성 중에 가장 거칠고 극단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부하들은 그를 “피투성이 고집불통 늙은이”라 불렀고, 1943년 한 야전병원에서 전쟁 노이로제에 걸린 병사를 “겁쟁이는 필요 없다”며 구타하는 일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한동안 면직된다. 그 뒤 영국으로 전속 명령을 받지만 그곳에서도 폭언을 해 문책당했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에 유대인 혐오주의자였다. 자주 유태인을 짐승으로 표현했으며, 그들을 옹호하는 정치인들도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도 엄청나 자주 소련을 자극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워싱턴과 언론의 유태인 유력인사들은 패튼을 다루기 힘든 인물로 인식하고 그의 대중적 인기를 깎아 내리려 노력했다.

그는 패망한 독일의 미군 사령관을 맡으면서 그는 독일인에 대한 가혹한 정책에 반발했으며, 이들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배려하려 애썼다. 그는 독일을 방패막이 삼아 소련의 세력 확장을 막고자 했다. 패튼의 공산주의에 대한 엄청난 혐오감과 인종차별적 인식은 맥아더 장군과 매우 흡사했지만, 맥아더가 이기적인 정치 군인이었던 반면, 패튼은 마지막 순간까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군인이 되고자 했다.


/ "태극기 휘날리며" 진태(장동건)
진태는 전쟁이 나자 동생 진석과 함께 전장에 투입됐고, 공부 잘하는 진석을 징집해제 시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무공 훈장을 받기 위해 전쟁광이 돼 간다. 그는 동생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투에 뛰어든다. 영화 속에선 총알이 알아서 피해간 덕분에 전쟁영웅이 되지만, 실전에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살아 남을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

진태는 영화 "플래툰(Platoon)"의 반즈 상사와 비슷하다. 그는 유능한 군인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분노에 휩싸여 동료인 앨리어스를 직간접적으로 살해한다. 즉, 진태와 마찬가지로 전쟁 통에 미쳐 살인기계로 변한,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인 셈.

/ "포레스트 검프" 포레스트(톰 행크스)
포레스트 검프는 정치적 영화 평론의 관점에서 봤을 때, 미국 공화당의 입장을 지지하는 “대변인”의 역할이다. 영화에선 민주당 정치인들과 히피, 평화주의자들을 직간접적으로 폄하하고, 무지하지만 충직하고 애국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은 멋지게 포장한다. 영화에선 포레스트가 월남전에 참전해 무공을 세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쟁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이 맹목적인 충성과 동료애만 있으면 영웅이 된다는 듯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이 장면에서 포레스트는 동료를 살리기 위해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 다니는 전장을 무조건 뛰었다. 그 결과 은성 무공훈장을 받지만, 진짜 전쟁이었다면 국립묘지에 묻혔을 것이다.


Posted by 열라착한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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